백두산 전설21

방학대(放鶴臺)

천지가의 자라 낚은 터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가면 얼마 멀지 않은 곳에 4, 5m되는 언덕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 언덕을 방학대(放鶴臺)라고 부른다.

옛날에 백두산천지는 단정학들이 모여드는 놀이터였다. 단정학들은 봄이면 남방에서 백두산천지로 날아들었고 가을이면 새끼학들을 거느리고 강남으로 날아가곤 하였다.

어느해 가을이었다. 세상에 늦게 태어난 탓으로 날개를 제대로 굳히지 못한 한 새끼학은 어미를 따라서 남방으로 날아갈 수 없게 되었다. 백두산천지가에 홀로 남은 새끼학은 찬 하늘을 바라보면 고독한 나날을 보내었다.

단풍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늦가을의 어느날이었다. 백두산으로 나무하러 갔던 한  부자집의 나무군이 천지가에 내려갔다가 불쌍한 새끼학을 발견하였다. 주둥이도 아직 굳지 않고 날개질도 변변히 하지 못하는 새끼학은 소슬한 가을바람에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새끼학을 불쌍히 여긴 나무군은 품속에 넣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야- 이게 뭐야."  새끼학을 처음으로 보는 부자집아이가 희한해하였다.
"이건 내거야."하고 주인집아이는 나무군의 응낙도 기다리지 않고 새끼학을 안고 달려갔다. 나무군이 저녁을 치르고 뜨락에 나섰을 때였다. 부자집아이는 뜨락에서 새끼학을 못살 게 굴었다. 주둥이를 잡아쥐고 빙빙 돌려도  보고 회초리로 껑충한 다리를 갈기기도 하였다.

부자집 아이가 못살게 구니 나무군은 욕도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하였다.

다음날도 나무군은 나무하러 가게 되었다. 그는 쪽지게에다 누데기를 가득지고 품속에는 새끼학을 안고 떠났다. 새끼학을 이 집에 두었다가는 언제 죽일지 모를 일이었던 것이다.

나무군은 천지가에 가서 새끼학을 둘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마침 한 벼랑에 굴이 있었다. 나무군은 굴속에다 누더기를 깔아서 학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다음, 들쭉과 같은 산열매를 가득 따다가 굴속에 넣고 학을 넣었다. 그는 학이 추워할까봐 굴어구도 잘 막아주었다.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고 찬 바람이 불었다. 나무군은 천지가를 찾아가서 학이 추위에 얼지 않겠는가고 보살폈다. 그해 겨울에 나무군은 이따금 학을 찾아가서 먹을 것이며 잠자리며를 보살펴주었다.

기다리던 이듬해 봄이 돌아왔다. 백두산천지가에 와서 보금자리를 잡던 학들이 강남에서 날아왔다. 죽었으리라고 생각했던 새끼학이 어미학으로 자라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학들은 기뻐서 야단이었다. 새끼학은 자기가 어떻게 지난 겨울을 났는가를 어미학에게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어미학은 나무군의 은혜를 단단히 갚아야겠다고 하였다.

따사로운 봄날, 나무군은 새끼학이 보고싶어서 천지가로 왔다. 학들은 날개를  푸덕이기도 하고 공중에서 날아예며 울기도 하면서 은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무군은 새끼학을 안고 깃을 쓰다듬어주었다. 그가 새끼학을 놓고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학들은 하얗게 무리를 지어서 앞길을 막고 새끼학은 뒤에서 그의  바지가랭이를 물어당기면서 좀체로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새끼학이 끄는대로 뒤걸음쳤다. 새끼학이 겨울을 나던 언덕에 이르자 학들은  더는 앞길을 막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든 나무군은 굴속을 들여다보았다.  굴속에는 단정학의 알만큼한 금덩어리가 모록이 쌓여있었다.
"허허, 이걸 갖고 가라고 그랬구나!"  나무군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금덩이 하나를 꺼내여 품속에 간직하였다. 부자집으로 돌아온 나무군은 주인앞에 금덩어리를 내여놓고 빚을 결산하도고 하였다.
"아니, 이놈이 담도 크구나. 어디가서 금덩이를 훔쳐다가 빚을 결산하려 하느냐?  안된다. 바른대로 말해. 금을 어디가서 훔쳐왔어?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관청에  잡아가겠다."  주인이 어찌도 붉으락푸르락하며 을러메는지 나무군은 저으기 당황해났다.
"이건 훔친 것이 아니웨다."
"그럼 어디서 났어?"
"건 말치 않겠수다."
"말치 않겠다구? 두고보자."

부자는 나무군을 돌려보내고 그 즉시로 관청의 우두머리를 찾아갔다. 금덩어리라는 소리를 들은 관청의 우두머리는 귀가 솔깃해졌다.
"정말이요? 가서 실물을 보기요." 그들은 허둥지둥 달려왔다. 관청의 우두머리가 나무군을 닦아세웠다."금덩이가 있다지? 보자!" 나무군은 후들후들 떨면서 금덩이를 내여놓았다. 이건 어디서 난거야. 실토하지 않으면 한평생 옥살이를 시키겠다." 학들이 해를 입을까봐 나무군은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관청의 우두머리까지 찾아와서 윽박지르는 바람에 입을 여는 수 밖에 없었다. 나무군의 말을 듣고 난 부자놈은 관청우두머리의 귀에다 입을 대고 소곤거렸다.

"그 금덩이를 다 들춰오고 학들을 붙잡아다가 금을 낳게 하면 우리 둘은 대뜸 억만부자로 될 것이우다."
관청우두머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무군을 향하여 뇌까렸다.
"이 금덩이는 몰수야. 래일 우리와 함께 천지로 가자. 네 말이 정말이면 이 금덩이를 돌려주고 네 말이 거짓말이면 살아오려니 하지 말아라."
누구 앞이라고 감히 거역한단 말인가! "예이!"하고 나무군은 순종하였다.

이튿날 부자와 관청우두머리를 나무군을 앞세우고 백두산으로 향하였다. 학들이 재앙을 입으리라 생각하는 나무군의 마음은 타다 못하여 재가 될 지경이었다. 화개봉에서 천지가로 내려가면서 나무군은 목청을 다하여 소리쳤다.
"학아 학아 어서 날아라, 너넬 잡으러 온단다!"
학들은 그의 외침 소리를 듣고 하늘에 하얗게 날아올랐다가 모두 제자리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나무군이 더 소리쳐도 학들은 태연하였다. 나무군을 따라서 학의 굴 앞에 가 선 부자놈과 관청우두머리는 입이 헤벌쭉하여졌다. 굴속에 노란 금덩이 두 개나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꺼내어 하나씩 나누어가졌다.

그들의 수작을 지켜보던 학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일시에 하늘로 날아올라가더니 멀리멀리 사라졌다. 학까지 잡으려다가 금덩이만 들춰낸 그들은 섭섭한 대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참 별일이었다. 발자국을 뗄 때마다 금덩이가 커졌다.
"어, 됐네, 됐어. 걸음마다 금덩이가 자꾸 커져요." 부자놈이 껄껄 웃으며 좋아하는데 관청우두머리도 입이 함박만해서 "내것도 커지요!"하고 맞장구를 쳐대었다.

그들이 산봉우리를 한절반 톺아올랐을 때였다. 금이 무거워서 등에다 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들은 옷을 벗어서 금을 싸고 등에다 졌다. 걸을수록 금은 무거워져서 숨도 쉬기 바쁘고 발도 옮겨디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귀한 금을 버릴 수 없었다. 버리자니 아깝고 그냥 지자니 무겁지 어찌할바를 모르고 망설이던 그들은 그만 금덩이에 깔려서 엎어지고 말았다. 금 밑에서 빠져나오려고 아무리 버둥질쳐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움직일수록 금이 커지는 바람에 둘은 다 지지눌려 황천객이 되고 말았다.

그자들이 숨지자 학들이 다시 날아왔다. 그후 나무군은 학들이 준 금덩이를 가지고 타향에 가서 집도 짓고 밭도 사고 아내도 맞아들이고 복을 누렸다.

사람들은 학의 굴이 있던 벼랑을 학을 살려 놓아준 곳이라고 하여 방학대라고 부른다 한다.

- 맹민수로부터 안도현 이도백하에서 83년 9월 리천록,최룡관(연변) 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