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의 전설(9)

 

白頭山 天氣

 아득한 옛날에 동해용왕, 흑룡강용왕, 천지용왕은 의형제를 삼고 서로 오가면서  의좋게 지냈다. 그들 중 제일 나이많은 동해용왕이 맏이었고 버금으로는 흑룡강용왕이었고 막내둥이는 천지용왕이었다.

 여름철이 돌아오면 동해용왕과 흑룡강용왕은 동생을 찾아서 백두산에 와서 놀다가 가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해 여름.

 동생의 안내를 받으며 두 형은 천지로부터 폭포에까지 내려왔다. 그날따라 날씨가  유난히 맑아서 폭포를 구경하기가 아주 좋았다.
수십명의 용녀들이 폭포에서 노니는 것은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용녀들은  흰날래를 활짝 펼치고 천길 벼랑에서 뛰어내렸다가는 폭포에서 튕기는 물바래를  잡아타고 외무지개와 쌍무지개사이로 너울너울 춤을 추며 오고갔다.
기절할 지경으로 매혹적인 광경에 정신을 홀딱 빼앗기고 군침을 삼키며 구경을 하는  자는 흑룡강용왕이었다. 그를 황홀케한 용녀는 남달리 파아란 옷을 입은 용녀였다.
치렁치렁한 머리를 등허리에 드리우고 날씬하고 가는 허리를 절도있게 움직이며  너울너울 춤추는 모습은 흑룡강용왕을 홀딱 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  야! 세상에 저렇듯 예쁜 용녀도 있었단말인가! 한번만 사귀어보았으면 평생에 딴  소원이 더 있으랴.'  이런 생각에 포옥 취한 흑룡강용왕은 동생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 파아란 옷을 입은 룡녀의 이름은 무엇이요?"
"하하... 그가 바로 이 동생의 애첩입니다. 이름은 미홍이라 부릅니다."
 흑룡강용왕은 천지용왕의 애첩이란 소리를 듣고 입만 쩝쩝 다시었다. 참 맹랑한  일이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막동이 애첩이 될 건 뭐란말인가!

밤이 깊었다. 동생이 차려주는 진수성찬에다 맛좋은 술까지 한껏 마신 흑룡강용왕은  미홍의 아름다운 자태가 눈앞에 자꾸 사물거려 도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그는 동생에게 사정하였다.
 "동생, 미홍이를 나한테 넘겨주게."
 "아니 형님두, 제수를 달라는 법이 있어요."
 "우린 서로 다른 핏줄을 타고난 형제이니 안된다는 법이야 없지 않소?"
 옆에서 듣고 있던 동해용왕이 둘째를 꾸짖었다.
 "야, 형제간의 의리를 버리고 망녕된 생각을 하지도 말아라. 그런 고약한 궁리는  아예 걷어치워라."
 흑룡강용왕은 형이 꾸짖는 바람에 다시 입을 열지 못하였지만 속은 그대로 새파랗게 살아있었다.

 그후 유두에 두 형은 또 백두산으로 놀러 왔다.
 하루는 온천에 와서 몸을 시원하게 씻고 낮잠을 청하였다.
 잠결에 용녀들의 기겁한 아우성소리가 들려오기에 동해용왕과 천지용왕이 눈을 번쩍  떴다. 그들 가운데 누워서 자던 흑룡강용왕이 보이지 않았다.  천지용왕은 짐작이 가는지라 쪽빛 용검을 꼬나들고 뛰어나갔다.  흑룡강용왕이 미홍이를 덮쳤는데 미홍이는 물고 뜯으며 죽기내기로 반항하고 있었다.
 "이놈아 내 칼을 받아라!" 천지용왕이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니 흑룡강용왕은 검은 용검을 들고 동생과 맞닥드렸다.  동해용왕이 쫓아가서 보니 두 동생이 대판으로 칼부림질하고 있었다. 둘이 다  두눈을 부릅뜨고 진짜싸움을 벌리고 있어서 기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땅에서  어울릴 때에는 성난 사자들 같고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아갈 때는 산매들처럼 빨랐다. 검과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불꽃은 번개처럼 번쩍이었다.  둘 중 어느 하나가 피를 흘릴 것만 같아서 동해용왕은 은빛룡검을 휘두르며 그들의 사이에 들어가서 싸움을 말렸다.
 "둘째야, 네가 도대체 무슨 지랄이냐? 너희들을 당장 용검을 거두어라."
 맏형이 가운데서 대성질호하는 바람에 둘째와 셋째는 용검을 거두는 수밖에 없었다.
 "어서 동생한테 사죄하지 못할고?"  동해용왕이 눈을 부라리며 둘째를 닦아세웠다.
 흑룡강용왕은 마지못하여 무릎을 꿇고 동생에게 빌었다.

 칠월 칠석날, 동해용왕과 흑룡강왕은 또다시 백두산으로 놀러왔다. 술에 취한 흑룡강용왕은 또 파아란 용녀가 생각나서 사고를 치고야말았다.  이번에는 맏형도 크게 노하였다.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는 둘째가 밉광스러웠던 것이다. 의리도 없고 체면도 없고 우정도 없는 흑룡강용왕을 당장 혼쌀을 먹여주지 못하는 것이 분하였다.
흑룡강용왕과 천지용왕은 서로  죽일놈살릴놈하면서 결사전을 벌렸다.  동해용왕은 천지용왕을 두둔하면서  흑룡강용왕을 쳤다. 그는 하늘높이 올라가서  흑룡강용왕에게 펄펄 끓는 물을 퍼부었다.  흑룡강용왕은 천지용왕을 견제하면서 차디찬  입김을 내뿜었다. 뜨거운 물은 우박이  되어 땅에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동해용왕과 천지용왕이 좌우에서   흑룡강용왕을 협격하자 흑룡강용왕은   적수들의 머리 위로 휙 날아 올라가서 얼음을  와르르 토하였다. 동해용왕은 뜨거운  입김으로 얼음덩이들을 녹여서 소나기가  되게 하였다.  천지용왕이 토하는 불길은 검은 구름을 헤가르는  번개가 되었고 그가 휘두르는 용검은 광풍을 휘몰아치게 하였다.

 아무리 싸워도 그들은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후로부터 흑룡강용왕은 형제들과 척을  지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화의를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지금도 쩍하면  맞닥드려 싸운다고 한다.

그들사이에 작은 싸움이 벌어지면 가랑비가  내리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면 우레가 울며 소나기가 퍼붓는다고 한다. 그들의  싸움이 잦기에 백두산의 천기는 누구도 헤아리기 어렵게 천변만화한다고 한다.

 
                    - 백명철로부터 안도현 소사하향에서 80년 3월  리천록(연변),최룡관 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