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전설20

홍선천(紅線泉)

홍선천은 백운봉의 서쪽중폭에 있는 옥장천과 60여m 떨어진 곳에 있다. 그곳에는 날개를 하늘에 펼친 듯한 한 쌍의 절벽이 있고 그 절벽사이로 올라가면 돌층계가 나 있다. 돌층계 밑에는 배구공만큼 큰 한 쌍의 바위가 있고 바위 밑에서는 샘물이 주르르 떨어져서 샘터에 고였다가 흘러내리고 있다. 샘물이 흘러내리는 밑바닥에는 유별나게 새하얀 암석이 깔려있다. 이 하얀 암석 위에는 붉은 줄이 쭉쭉 비껴져있다. 사람들은 이 샘물이 흐르는 곳을 홍선천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이런 사연이 깃들어있다.

옛날에 백두산천지의 용왕은 딸을 보았는데 뜻밖에도 온몸에 은빛이 반짝이는 백룡을 보았다. 용왕의 얼굴에는 그냥 웃음꽃이 피어났고 온 용궁의 신하들도 백룡을 금이야 옥이야 귀중히 여기고 꽃같이 사랑해주어서 백룡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느덧 백룡이 이팔청춘에 접어들었다.  하루는 칠성국의 왕자가 구름을 타고 백운봉에 내려와 천지를 굽어보았다. 웅위롭고  장려한 산봉우리들속에 있는 천지는 하나의 거울마냥 하늘의 조화를 낱낱이 비춰주고 있었다. 그가 한참 호기심에 끌려 천지를 바라보는데 백운봉 밑에서 은빛이  햇살처럼 비껴왔다. 왕자는 하도 신기하여 천지 가로 내려갔다. 천지 가에는 아름다운  백룡이 서 있었다. 칠성국 왕자가 그 모습을 보니
    말쑥한 얼굴은 옥으로 벗었는가
    한쌍의 눈매는 그윽한 호수런가
    얼핏 봐도 그 모습 황홀한데
    호수 속에 뛰어들어 뒹굴고 싶어라

    칠성국의 미인들 하늘을 떨치나
    천지 가에 섰는 백룡 어이 따르랴
    발바닥이 붙은 듯 떨어지질 않나니
    설레는 이 마음 달랠길 없어라

왕자는 헛기침을 하고나서 공손하게 말을 걸었다.
"묻기는 죄송하오나 미인은 누구인지요? 나는 칠성국의 왕자이오다."
백룡이 깜짝 놀라서 머리를 들고 보니
    찬란한 금관을 높이 쓴 그 모습
    천하에 뛰어난 장수이어라
    옥띠를 허리에 두른 그 자태
    산악을 쥘락펼락할 기상이여라.

    용궁에 문무백관 많다 하여도
    칠성국의 왕자와야 어이 비기랴
    한 생을 저런 이와 고락을 같이하면
    천지간에 부러울 것 무엇 있으리.

왕자와 백룡이는 천생연분이나 타고났던지 첫눈에 서로 정이 들었다. 그래서 백룡은 수줍음을 달래며 은방울 구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소녀는 천지용왕의 딸 백룡이옵니다."
"내 그대와 함께 천지 가를 거닐고싶나니 허락하옵니까?"
백룡은 속이 활랑거려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대답 대신 왕자한테로 조심조심 걸어 갔다.
왕자와 백룡이는 나란히 서서 천지가를 거닐며 오래도록 이야기하였다. 왕자는 칠성국의 이야기를 하였고 백룡이는 용궁의 이야기를 하였다. 왕자의 이야기는 백룡의 마음에 새로운 세계를 펼쳐주었고 백룡의 이야기는 왕자의 마음에 새로운 세계를 펼쳐주었다.

그후로부터 그들은 하루가 멀다 하게 만나곤 하였다.

하루는 백룡이 백운봉을 가리키며
"우리 함께 저 산에 올라가보았으면 좋겠사와요."하고 말하였다.
칠성국의 왕자는 새하얀 채찍을 들어서 백운봉의 험한 벼랑을 향하여 "쨩!"쳤다. 순간, 그들의 앞에 있는 벼랑이 갈라지면서 하얀 돌길이 났다. 왕자는 백룡의 손목을 잡고 백운봉으로 올라갔다. 산중턱을 지나니 길이 막혀 더는 올라갈 수 없었다. 왕자는 채찍자루로 날개를 펼친 듯한 한쌍의 벼랑사이를 톡톡 두드렸다. 그랬더니 돌층계길이 났다. 왕자는 백룡을 이끌고 그 돌층계를 밟으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삐쬬르릉, 삐, 삐쬬르릉"하고 우짖는 이름모를 뭇새들이 쌍쌍이 짝을 지어서 날아옜다. 그것들은 은방울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나뭇가지사이를 요리조리 쫓아다니기도 하고 나란히 앉아서 깃을 다듬어주면서 정을 올리기도 하였다.

왕자와 백룡이는 새들의 재롱을 구경하면서 저도 모르게 손을 잡았다. 그들이 넋없이  서있을 때 새들은 포르릉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제야 왕자는 백룡의 보동보동한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왕자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난 그대와 저 새들처럼 지내고싶소. 만약 그대가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나한테  잡힌 손을 뽑소."
왕자는 두손으로 백룡의 옥같이 깨끗하고 솜같이 부드러운 손을 쓰다듬었다.  백룡이는 왕자가 하는대로 내 버려두었다. 그들은 이렇게 한 생을 약속하였다.

헤어지면 그립고 만나면 즐거워 그들의 상봉은 날이 갈수록 잦아졌다. 산들바람은 그들을 위하여 부는 것 같았고 백두산의 아름다움은 그들을 위하여 빚어진 것만 같았다. 한없는 사랑, 한없는 정이 샘솟듯하여 왕자와 백룡이는 꿀처럼 달콤한 나날을 보내었다.

드디어 백룡이는 잉태하게 되었다. 속일 수 없는 일이라 백룡이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어머니한테 모든 일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어머니, 이 딸은 죽는 한이 있어도 칠성국 왕자와의 연분을 배반할 수 없사오니 아버님께 말씀을 잘 올려서 일이 꼭 성사되게끔 하여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부탁도 절절하고 결심도 반석같은 백룡이었다. 왕비는 "후-"하고 한숨을 쉬였다.

백룡의 몸이 달라지자 왕비는 하는 수없이 용왕에게 딸의 비밀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걔의 소행이 괘씸하오나 널리 양해하여주옵소서."하고 왕비는 눈굽을 찍었다.  용왕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명문가족의 수치라 당장 영을 내렸다.
"여봐라, 백룡을 불러들이거라."
백령이 아미를 숙이고 천천히 들어섰다.
"네가 칠성국 왕자와 거래한다는 것이 정말이냐?"
"예이!"
대답소리는 낮으면서도 떳떳하였다. 백룡이는 진작 이런 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한터이라 마음을 단단히 먹었던 것이다. 백룡의 당돌한 대답에 용왕은 움찔 놀랐다. 더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을 확연히 느낀 용왕은
"저년을 당장 끌어다 목을 잘라라!"하고 추상같이 호령하였다.
"용왕님, 무남독녀를 어찌 그렇게 하오이까!"  용왕의 신하들은 일제히 꿇어앉아서 백룡에게 벌을 덜어줄 것을 간절히 바랐다.
용왕은 하는 수 없이 마음을 눅잦히고 백룡의 바깥출입을 엄금시키라고 하였다. 시간은 빨리도 흘러 백룡이 해산할 때가 되었다. 왕비는 백룡을 빼돌려서 쥐도새도  모르게 홍선천으로 보내였다.

홍선천에서는 칠성국의 왕자가 눈이 헐 게 백룡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부여안고 눈물을 흘리며 그리움을 풀었다.
갑자기 백룡이는 배가 아프다면서 이마에 콩알같은 땀을 돋혔다. 왕자는 백룡이를 안아서 날개벼랑 밑에 있는 동굴에 가져다 눕혔다. 왕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백룡이는 날개돋친 은룡 쌍둥이를 낳았다.
짬없는 벽에도 바람이 샌다고 백룡이가 홍선천에서 쌍둥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용왕의 귀에 들어갔다. 용왕은 한참이나 어리 뜩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내궁의 장수들 듣느냐? 당장 백운봉에 가서 백룡과 은룡들의 날개를 뽑아  버려라."
내궁장수들의 불의의 습격을 받은 왕자와 백룡은 쌍둥이를 보살필 사이도 없이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갑자기 부모와 갈라진 쌍둥이들이 "응아! 응아!"하고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애처롭기 그지없어서 벼랑도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내궁장수들은 쌍둥이들이 불쌍해서 겨드랑이에서 큰깃만 뽑아 버리고 작은 털들은 그대로 두었다.

그래도 용왕은 시름이 놓이지 않아서 장수들을 파견하여 홍선천을 지키게 하였다. 백룡은 자식들에게 젖을 먹일 수 없게 되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쌍둥이를 눈을 뜨고는 차나 내려다볼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칼로 오리오리 발가내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들은 방법을 생각해내였다. 둘이서 구름을 타고 백운봉 상공에 와서 왕자는 백룡의 안전을 보호하고 백룡은 젖을 짜서 지금의 샘터에 가득 채워넣었다. 백룡이 짜놓은 젖은 샘터에 넘쳐나서 백석 위로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은룡쌍둥이들은 그 젖을 빨아먹으며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커감에 따라서 겨드랑이에 남은 털도 자라났다. 쌍둥이는 그것을 날개로 저으며 부모들이 있는 하늘로 날아오르려 하였다. 하지만 큰 깃이 없는 그들은 높이 날지 못하고 떨어져서 피를 흘리곤 하였다. 그들의 붉은 피는 새하얀 백석 위로 줄줄이 흘러내렸다.

백룡이와 왕자는 하늘에서 이 정경을 내려다보면서도 경계가 삼엄하여 어쩔 방법이 없어 애타는 눈물만 흘렸다. 그들의 눈물은 샘물로 되어 백석으로 흘러내렸다.

달이 가고 해가 지나면서 쌍둥이의 피는 백석 위에 굳어져 지을 수 없는 붉은 선을 그어 놓았다. 사람들은 새하얀 백석 위에 붉은 선이 줄줄이 늘여있고 그 위로 맑은 샘물이 흐른다고 하여 이 샘물을 홍선천이라고 부르고 있다. 어떤 곳에는 또 금선천이라고 씌여져있다.

- 박문선으로부터 안도현 이도백하에서 83년 2월 리천록,최룡관(연변) 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