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의 전설(15)

 

관일봉(觀日峰)

백두산의 서쪽에 관일봉이 있다.

관일봉은 멀고 먼 옛날에 백두산을 지켜싸운 젊은 장수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봉우리이다. 한번은 외적들이 백두산이 욕심나서 군사를 동원하여 들이쳤다. 나라에서는 백두산의 험한 산과 깊은 골짜기를 손금보듯하는 곽장수를 파견하여 외적들을 물리치게 하였다. 곽장수는 나이 젊고 용맹하고 지혜로왔다. 그런데 살벌한 적군의 수자가 아군보다 엄청나게 많아서 적들과 정면싸움을 할 수 없었다. 곽장수는 외적들을 이리저리 끌고다니며 쳤다. 높은 산 깊은 골짜기에다 적을 끌어들이여 몇 번 치고나니 곽장수네 군사들도 어지간히 지쳤다. 어떻게 하면 힘을 적게 들이고 부상자를 적게 내고 큰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까?
곽장수는 이런 궁리를 하며 폭포 밑에 이르렀다.
폭포밑에는 깜찍하게 생긴 수달 한 마리가 폭포 위를 향하여 뛰고 있었다. 폭포 위로  뛰어올라가려고 수달은 모진 애를 쓰고 있었다. 되지 않은 일을 자꾸 해내려는 수달이 하도 불쌍하여 곽장수는 허리를 굽혀서 수달을  안고 폭풍우의 천하를 지나서 천지로 갔다.

천지로 간 그는 수달을 천지물에 넣었다. 

그날 밤, 곽장수가 자정이 넘도록 병법을 연구하고 있는데 문소리가 삐걱 나며  아름다운 여인이 사뿐사뿐 걸어왔다.
"아닌 밤중에 웬 계집이뇨? "하고 곽장수는 물었다.
여인은 곽장수의 호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생긋 웃었다.
"놀라지 마옵소서. 소녀는 장군이 구해준 수달이옵니다."
"수달이 어이하여 인간이 되었는고?"
여인은 허리를 급혀 절을 올리며 "기실 소녀는 천지용왕의 딸이옵니다. 낮에 밖으로 놀러 나왔다가 그만 승차한 세찬 물결에 밀려서 폭포 밑에 떨어졌사옵니다. 마음씨 고운 장군을 만나서 목숨도 구하고 부모의 슬하에 다시 안기게 되었사옵니다. 우리 아버님께 은혜에 보답하라고  소녀를 변신시켜 여기로 보냈사옵니다. 용왕님의 말씀인즉 외적이 이곳에 쳐들어오면 백두산의 산천초목은 물론 천지도 큰 재앙을 입는다면서 장수님을 잘 모시라  하였사옵니다."
곽장수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용궁공주를 만나고 보니 일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수줍음을 타는 공주의 얼굴에선 빨간 노을이 타고 있었다.
"그래 그대는 오늘부터 나의 곁에 그냥 붙어있겠다는 말이요?"
"호호호..."
곽장수의 투박스러운 말에 공주는 까르르 웃고나서 말했다.
"아직은 일찍하옵니다. 장수님께서 외적을 다 물리치시고 승리하여야 저는 진짜  사람으로 되옵니다. 그때부터라야 장수님과 백년해로 할 수 있사옵니다. 그전에  부부생활을 하면 장수님은 참패를 면치 못할 것이옵니다."
싸움에서 참패를 당하게 된다는 말을 들은 곽장수는 정신을 바싹 차리였다.
"그럼 승전한 다음에 봅시다. 나라를 위하여, 당신을 위하여, 우리의 언약을 위하여  나는 꼭 승전하겠소!" 
공주는 그윽한 눈길로 곽장수를 바라보면서 간곡히 당부하였다.
"오래잖아 원수들이 쳐들어올 것이옵니다. 원수들을 물리치자면 백두산의 해돋이를 잘 살펴야 하옵니다. 해가 한번 불쑥 솟았다가 사라지면 그날은 진지를 굳게 지키며  방어만 하셔야 하옵니다. 해가 두 번 솟았다가 사라지면 먼곳으로 진격하지 마옵시고  진지부근에서 싸워야 하옵니다. 만약 해가 세 번 솟구쳐오르면 그날은 적들을 호되게  족쳐 나가 적장의 우두머리를 베여야 하옵니다.

그후부터 장군은 병졸을 파견하여 산마루에 올라가서 해돋이를 살펴보게 하였다.
 며칠이 지나서 또 싸움이 벌어졌다. 원수들은 입에 피를 물고 진격하였다. 곽장수는 공주가 가르쳐주던 대로 해에 맞추어 행동하였다. 과연 진을 치면  철옹성이 되고 내밀면 천하에 당할 자 없어 원수들은 한발자국도 더 전진할 수 없었다.

하루는 장수가 몸소 나가서 해돋이를 살폈다. 새파란 불길 속에서 해가 솟아오르니 검은 구름이 날아와 막아 버리면서 순식간에 해를 삼켰다. 이윽고 둥그런 해가 구름을 헤치고 솟아올랐다. 이번에도 먹장구름이 해를 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구름 한끝이 빨갛게 물들며 찬란한 태양이 솟아올랐다. 명랑한 새아침이 시작되었다.
'오늘이 바로 원쑤를 소멸할 날이로구나!' 곽장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산마루에서 내려왔다.
그날 곽장수는 군사를 지휘하여 적진을 맹렬하게 들이쳤다. 적들은 배겨내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다. 곽장수는 거침없이 적군속에 들어가서 외적들을 삼대 베듯이  쓸어 눕혔다. 해질 무렵에 곽장수는 마침내 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를 베고 최후승리를 거두었다.

곽장수는 인마를 거두어 들이고 승리의 축하연을 베풀었다. 그는 장병들의 공로를  높이 치하하면서 마음껏 즐겼다. 축하연이 한창 흥성할 때 절세의 미인인 용궁공주가 나타났다. 새하얀 비단으로 얼굴  절반을 살짝 가리운 공주는 곽장수 앞으로 사뿐사뿐 걸어왔다. 곽장수의 장병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어리둥절해서 서있었다. 곽장수는 장병들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간단히 들려주었다. 장병들은 너무도 고맙고  기뻐서 환희풍에 걸린 듯이 술을 마구  퍼마셨다.

그후부터 백두산에는 평화로운 세월이 흘러갔다. 원수들이 몇 번 집적거리기는 하였으나 그때마다 해돋이를 보고 길흉을 가려서 싸움마다 외적을 소멸하곤 하였다. 그리하여 곽장수네가 해돋이를 보던 산봉우리는 자연히 관일봉(觀日峰)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박구남으로부터 이도백하 요양원에서 77년 3월  리천록,최룡관(연변) 수집-